현대인에게 ‘굿’은 종종 오해받는다. 누군가는 그것을 낡은 미신이나 사라져야 할 미개한 의식으로 치부하고, 또 누군가는 민속 공연이나 문화유산 정도로 여긴다. 하지만 한국의 무속은 오랫동안 삶의 고통을 해소하고, 감정을 정화하며, 존재의 위기를 치유해 온 집단적 정서 치료의 장이었다.
특히 ‘굿판’은 단지 신을 부르는 종교 의식이 아니라, 슬픔, 억울함, 한, 분노, 상실 같은 감정의 집단 표출과 해소가 일어나는 무대였다. 고통받는 사람은 굿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울고, 춤추고, 때로는 웃으며 마음속 깊이 눌려 있던 감정을 밖으로 쏟아냈다. 이는 오늘날 심리 치료에서 말하는 ‘감정 정화’와도 유사하다.
이 글에서는 한국 전통 무속에서 굿이 어떤 방식으로 심리적 고통을 다루었는지를 살펴본다. 굿은 정말로 영혼을 위한 의식이었을까, 아니면 억눌린 마음을 위한 또 하나의 심리치료였을까?
1. 무속의 본질: 마음의 병을 다스리는 전통 지혜
무속은 단순한 신앙 체계가 아니다. 한국의 무속은 고대로부터 이어져 온 심리·사회적 위기 대응 시스템이었다. 병이 낫지 않거나, 가족이 사고를 당하거나, 반복되는 불운에 시달릴 때 사람들은 무당을 찾았다. 그 배경에는 한 가지 공통된 믿음이 있었다.
"몸의 병은 약이 고치고, 마음의 병은 굿이 고친다."
실제로 전통 사회에서 굿은 정신적 이상이나 불운의 원인을 외부의 영적 존재(귀신, 조상신, 원혼 등)로 돌림으로써, 고통의 책임을 개인에서 분리시켜주었다. 이는 자기비난에서 벗어나게 하는 심리적 방어기제로 작용했다. 현대 심리학에서 ‘외부귀인’이 일시적인 안정을 가져오는 것과 매우 유사하다.
또한 무당은 단순한 제례의 집행자가 아니라,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상담자)이었다. 의뢰인의 고통을 듣고, 그의 삶의 서사를 정리해 주며, 감정을 공감하고 표현하게 했다. 이런 면에서 무속은 우리 민족 고유의 상담 시스템이자, 감정적 안전망이기도 했다.
2. 굿판에서 벌어지는 ‘감정 정화’의 드라마
굿은 단순한 제례 의식이 아니다. 그것은 소리(굿거리 장단), 춤(신춤), 말(신령의 메시지), 몸짓(무당과 참여자의 표현), 눈물(의뢰인의 감정 폭발)이 함께 얽힌 종합적인 심리극에 가깝다.
굿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 중 하나는 ‘신내림’ 또는 ‘접신’이다. 무당은 신령의 존재를 빌려 의뢰인의 고통을 이야기하고, 해소의 메시지를 전한다. 무당이 신의 입을 빌려 말하는 순간, 의뢰인은 자신의 깊은 내면 이야기를 ‘남의 입을 통해’ 듣게 된다. 이는 일종의 대리 표현으로, 자기를 객관화하고 감정을 수용하게 하는 효과가 있다.
특히 울음은 굿의 핵심이다. 굿판에서 울음은 금기가 아니라 필수다. 무당이 슬픈 사연을 읊조리면 의뢰인은 눈물과 함께 자신 안의 ‘한’을 토해낸다. 때로는 웃음, 때로는 분노가 동반되기도 한다. 이 과정을 통해 억눌린 감정은 터져 나오고, 긴장된 심신은 이완된다. 이는 심리학적으로 말하는 감정의 해소와 통합과 같은 기제다.
3. 공동체 치유의 장: 굿은 혼자가 아닌 모두의 것이었다
굿은 개인의 문제가 아닌 공동체의 일이었다. 마을굿, 동제굿, 별신굿처럼 마을 단위로 치러지는 굿은 공동체의 집단 심리를 반영했다. 그 해 가뭄이 들었거나, 사고가 자주 발생했거나, 질병이 퍼졌다면 마을 사람들은 함께 굿을 열어 불안을 다스렸다.
굿판에서는 한 개인의 사연이 온 마을의 ‘공감’으로 연결된다. 누군가가 상실이나 슬픔을 겪었다면, 그것은 남의 일이 아닌 우리 모두의 일이었다. 함께 울고, 함께 기원하고, 함께 박수치며 춤을 추는 가운데, 고통은 개인의 몫이 아니라 공동의 감정이 되어 해소된다.
이 과정은 현대 집단치료와도 닮아 있다. 공감과 공통 경험, 연대감 속에서 정서적 지지가 형성되는 메커니즘이 굿판에서도 자연스럽게 작동했던 것이다.
또한 굿은 언어로 표현되지 못한 감정을 음악과 몸짓으로 풀어내는 통로이기도 했다. 장단은 리듬을 타고 몸을 흔들게 했고, 그 흔들림은 감정의 흐름을 촉진했다. 억눌렸던 감정은 장단과 함께 흔들리며 몸 밖으로 배출되었다.
4. 굿의 현대적 재해석: 전통에서 배우는 심리치유의 힌트
오늘날 우리는 심리상담실을 찾아가고, 명상을 하며, 감정을 글로 적어내는 다양한 방식으로 마음을 다스린다. 그러나 무속과 굿판에서 일어나는 ‘몸으로 하는 감정 치료’, 그리고 ‘공동체적 울음과 위로’는 현대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물론 지금의 굿을 그대로 따를 수는 없다. 하지만 굿의 핵심을 되짚어 보면, 우리는 다음과 같은 힌트를 얻을 수 있다.
감정은 억누를수록 병이 된다. 표현해야 한다.
고통은 말로만 다 풀 수 없다. 몸의 움직임, 소리, 눈물도 필요하다.
고통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누군가 함께 있어야 한다.
비이성적인 것 속에도 치유의 본질은 숨어 있다.
굿은 그 자체로 완벽한 치료 시스템은 아니었지만, 최소한 그 시대의 사람들에게 심리적 환기, 공감, 자기 수용, 연대를 제공해주는 하나의 길이었다. 무속은 한국인의 오랜 심리 언어이며, 굿은 억압된 감정에 말을 건네주는 무대였다.
무속을 단지 과거의 미신으로 보는 시선은 너무 협소하다. 굿은 역사 속에서 억눌린 감정과 상처를 해소하는 정서적 도구이자, 치유의 언어였다. 무당은 신을 부르지만, 결국에는 사람의 마음을 다독이는 자였고, 굿은 그 마음이 쉴 수 있는 자리였다.
지금 우리도 삶에 지치고 마음이 아플 때, 어떤 방식으로든 감정을 풀어내고, 공감받고, 위로받는 장이 필요하다. 굿이 남긴 치유의 메시지는 지금 이 시대에도 여전히 살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