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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적 거리감이 정의를 만든다: 피해자와 거리감에 따른 처벌 태도 변화

by 소년의 뉴스 2025. 6. 11.

인간의 도덕 판단은 왜 일관되지 않을까?

하나의 범죄 사건이 사회적 공분을 일으키는 반면, 유사한 범죄는 대중의 무관심 속에 묻히는 경우가 종종 있다. 어떤 사건은 수많은 사람들이 분노하며 강력한 처벌을 요구하지만, 또 다른 사건은 조용히 잊혀지거나, 심지어 가해자의 사정을 동정하는 여론이 형성되기도 한다. 왜 우리는 비슷한 범죄에 대해 이렇게 다른 감정과 판단을 내리는 것일까? 이 질문은 단순한 여론의 차이를 넘어, 인간 심리의 중요한 메커니즘을 탐구하게 만든다.

이 글에서는 그 원인을 '심리적 거리감' 이라는 개념에서 찾고자 한다. 심리적 거리감이란 시간, 공간, 사회적 유사성, 가상성 등 다양한 차원에서 느끼는 심리적인 멀고 가까움을 의미한다. 우리는 물리적으로나 사회적으로 가까운 대상에게 더 큰 공감과 분노를 느끼고, 더 엄격한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는 경향이 있다. 반대로, 멀게 느껴지는 피해자나 가해자에 대해서는 판단이 느슨해지거나 무관심해지기 쉽다.

예를 들어, 같은 종류의 폭행 사건이라 하더라도 피해자가 나와 비슷한 연령대이거나 지역 주민인 경우, 혹은 언론을 통해 자주 접한 인물일 경우 더욱 분노하게 된다. 반면 외국에서 발생했거나, 언어도 다르고 문화적 배경도 낯선 인물이 피해자인 경우에는 관심조차 갖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처럼 심리적 거리감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깊숙이 도덕 판단에 개입하며, '공정성'이라는 이름으로 행사되는 사회적 태도마저도 뒤흔들 수 있다.

심리적 거리감은 도덕 심리학과 사회 심리학에서 매우 중요한 개념으로 자리 잡고 있다. 특히 사람들의 공감 능력, 책임감, 처벌 강도에 대한 결정에서 이 개념은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우리가 형벌을 결정할 때 중요하게 여기는 요소들 예컨대 피해의 정도, 가해자의 의도, 사회적 파장 등 은 사실상 심리적 거리감과 깊은 연관을 맺고 있다. 어떤 사건은 언론 보도나 SNS를 통해 나와 '심리적으로 가까운 일'로 재구성되며 처벌 요구가 증폭되고, 또 어떤 사건은 구조적 원인이나 정치적 이유로 거리감이 더해져 형벌의 정당성이 흐려진다.

이 글은 총 세 부분으로 구성된다. 첫 번째 장에서는 심리적 거리감이란 무엇인지, 그것이 어떻게 형성되며 인간의 인지 체계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탐구한다. 두 번째 장에서는 심리적 거리감이 처벌 태도에 구체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실험과 사회적 사례를 통해 분석한다. 마지막 세 번째 장에서는 이러한 거리감의 편향을 줄이기 위해 개인적, 제도적, 사회적 차원에서 어떤 노력이 가능한지 제안한다. 궁극적으로 이 글의 목적은 '심리적 거리감'이라는 렌즈를 통해 우리가 정의를 판단하고 형벌을 결정할 때 얼마나 많은 심리적 기제가 작동하는지를 되돌아보게 만드는 것이다.

우리는 정의(justice)를 추구한다고 말하면서도, 정작 그 정의가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적용되는지에 대해서는 충분히 질문하지 않는다. 심리적 거리감은 우리가 진정한 공정성을 실현하는 데 있어 가장 보이지 않는 장벽이자, 동시에 반드시 극복해야 할 심리적 한계다. 공감의 대상이 가까울수록 분노는 커지고, 멀수록 무뎌지는 이 복잡한 인간 심리를 이해하는 것이야말로, 더 나은 사회를 위한 첫걸음일 것이다.

 

심리적 거리감이 정의를 만든다: 피해자와 거리감에 따른 처벌 태도 변화
심리적 거리감이 정의를 만든다: 피해자와 거리감에 따른 처벌 태도 변화

1. 심리적 거리감이란 무엇인가? 가까움과 멀어짐의 심리학

 

심리적 거리감은 인간이 세상과 타인을 인지하고 평가할 때 중심이 되는 개념 중 하나다. 이는 단순히 물리적 거리를 의미하지 않는다. 우리가 누군가를 '가깝다' 혹은 '멀다'고 느낄 때, 이는 시간적 거리, 공간적 거리, 사회적 거리, 그리고 개념적 거리라는 네 가지 차원에서 구성된다. 이 개념은 사회 심리학자들이 인간의 인지적, 정서적 판단을 설명하기 위해 제안한 것으로, 특히 도덕적 판단, 공감, 책임감, 행동 결정 등에 깊숙이 영향을 미친다.

첫 번째로 살펴볼 수 있는 것은 시간적 거리이다. 어떤 사건이 현재에 가깝게 느껴질수록 우리는 그것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예컨대 오늘 일어난 범죄 사건은 과거 수년 전에 발생한 사건보다 훨씬 큰 감정 반응을 유발한다. 이는 우리 뇌가 즉각적인 위협이나 사건에 더 주의를 기울이도록 진화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우리는 가까운 과거나 현재에 일어난 일에 더 많은 공감과 분노를 느끼며, 더 강력한 처벌을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두 번째는 공간적 거리다. 피해자가 우리와 같은 도시나 지역, 혹은 같은 나라에 거주하고 있을 때 우리는 그 사건을 '우리 일'로 느끼는 경향이 있다. 반면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발생한 사건은 우리의 일상과는 무관하다고 느끼기 쉽다. 이는 언론 보도의 영향을 강하게 받는다. 국내 사건은 보도 횟수나 상세한 정보가 많고, 가해자와 피해자의 얼굴, 배경 등이 구체적으로 그려지며 심리적 거리감을 줄인다. 반면 외국 사건은 간략히 소개되거나 통계로만 처리되는 경우가 많아, 심리적으로 '먼 이야기'로 남게 된다.

세 번째는 사회적 거리다. 여기에는 연령, 성별, 인종, 종교, 계급, 정치적 성향 등의 유사성과 차이가 포함된다. 우리는 자신과 비슷한 사람에게 더 쉽게 공감하고, 그 사람의 고통을 자신의 일처럼 느낀다. 예컨대 중년 여성이 중년 여성 피해자에게 더 공감하거나, 대학생이 또래 대학생 피해자에게 더 큰 분노를 느끼는 경향이 있다. 반대로 자신과 거리가 멀다고 느껴지는 사회적 집단 예컨대 노숙인, 이민자, 소수 인종에 대한 공감은 상대적으로 낮아진다. 이로 인해 피해자가 어떤 사회적 집단에 속해 있는지는 대중의 처벌 태도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인이 된다.

네 번째는 개념적 거리, 혹은 추상적 거리다. 이는 사건의 정보가 얼마나 구체적인가에 따라 달라진다. 추상적인 통계나 일반적인 설명은 심리적으로 먼 것으로 인식되며, 구체적인 사례나 실명, 사진, 영상은 심리적으로 가까운 인상을 준다. 예컨대 '10만 명이 피해를 입었다'는 말보다, 한 사람의 이름과 얼굴, 사연이 구체적으로 소개될 때 사람들의 감정은 훨씬 더 강하게 반응한다. 이처럼 인간은 개별 사례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며, 통계적 정보에는 감정적으로 무뎌지는 경향이 있다. 이를 일컬어 '하나의 죽음은 비극이지만, 백만의 죽음은 통계다'라는 유명한 말로 요약할 수 있다.

이러한 네 가지 거리감은 상호작용하며 더욱 복잡한 영향을 만들어낸다. 예를 들어, 같은 시간에 발생한 사건이라도 공간적, 사회적, 개념적 요소에 따라 사람들의 반응은 달라진다. 일본에서 일어난 사건이라 해도, 피해자가 한국 유학생이거나 가족이 그 사건을 언론에 호소하는 경우, 우리는 그 사건을 더욱 가깝게 느끼게 된다. 반대로 한국에서 일어난 사건이라도 피해자가 외국인 노동자이고, 관련 정보가 거의 보도되지 않는다면 사람들은 그 사건을 멀게 느끼고 쉽게 잊어버린다.

심리적 거리감은 일상 속의 대인관계뿐 아니라, 국가 정책, 언론 보도, 사법 시스템 등에도 광범위한 영향을 준다. 예를 들어 정치인이나 사회 지도층이 피해자에게 더 큰 거리감을 느끼는 집단 예컨대 사회적 약자, 난민, 노숙자 등의 고통에 둔감한 것은 이 심리적 거리감과 무관하지 않다. 또한 언론이 어떤 사건을 집중 조명하고, 피해자의 목소리를 얼마나 전달하느냐에 따라 대중이 느끼는 거리감은 극적으로 변화할 수 있다. 이것은 단순한 '보도의 방식'이 아니라, 사회 전체가 공감하고 정의를 실현하는 과정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이와 같은 심리적 거리감은 무의식적으로 작동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대부분 자신의 판단이 공정하고 일관되다고 믿는다. 그러나 사실상 우리는 매 순간 특정 대상에게 더 많은 감정과 관심을 주고, 어떤 대상은 무시하거나 간과하며 살아간다. 이는 인간의 뇌가 정보를 효율적으로 처리하기 위해 사용하는 인지적 단순화 전략의 일환이다. 하지만 이 전략은 동시에 심각한 도덕적 불균형을 초래할 수 있다. 피해자가 누구냐에 따라 우리가 내리는 도덕 판단이 달라진다면, 그것은 곧 정의가 보편적이지 않음을 의미한다.

결론적으로, 심리적 거리감은 단순한 심리 현상이 아니라, 사회 정의를 좌우하는 강력한 변수다. 우리는 누구나 이런 거리감을 경험하며, 이를 완전히 제거할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가 그것을 인식하고,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는지를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도덕적 판단의 편향을 줄이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다음 장에서는 이러한 거리감이 실제로 처벌 태도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를 구체적인 사례와 실험을 통해 분석해보겠다.

 

2. 심리적 거리감과 처벌 태도의 연관성 실험과 사례로 살펴보기

 

우리가 범죄를 바라보고 처벌을 요구할 때, 그 태도는 합리적 판단보다는 정서적 반응에 좌우되는 경우가 많다. 특히 피해자와 가해자 사이의 심리적 거리감은 이러한 정서 반응의 강도와 방향을 결정짓는 데 큰 역할을 한다. 본 장에서는 다양한 실험과 실제 사례를 통해, 심리적 거리감이 사람들의 처벌 태도에 어떻게 영향을 주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이로써 우리의 도덕 판단이 얼마나 맥락적이며, 때로는 비합리적일 수 있는지를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첫 번째로 소개할 실험은 사회 심리학자인 캐롤린 와일리와 그의 동료들이 진행한 공감과 처벌 간의 관계를 탐구한 연구이다. 실험 참가자들에게 가상의 폭력 사건을 설명한 뒤, 피해자의 정보 예컨대 이름, 나이, 배경, 얼굴 사진 등을 제공하거나 제공하지 않았다. 그 결과, 피해자에 대한 정보가 구체적으로 주어진 참가자들이 그렇지 않은 참가자보다 더 강력한 처벌을 요구했다. 이들은 가해자에게 평균적으로 더 긴 형량을 부과했고, 더 높은 도덕적 비난을 가했다. 이는 심리적 거리감이 가까울수록 공감이 증가하고, 이는 곧 처벌의 강도 상승으로 이어진다는 점을 보여준다.

두 번째로, 미국 노스웨스턴 대학의 로리 루돌프 교수팀은 참가자들에게 뉴스 기사 형태로 구성된 여러 범죄 사례를 읽게 했다. 같은 범죄 내용이었지만 피해자의 사회적 거리 인종, 출신 국가, 성별, 종교 를 달리하여 제시했다. 결과는 명확했다. 참가자들은 자신과 사회적으로 유사한 피해자(예: 같은 인종, 같은 종교)를 당한 사건에 더 큰 분노를 느끼고, 더 무거운 형벌을 원했다. 반면 사회적으로 이질적인 피해자가 등장한 조건에서는 ‘그럴 수도 있지’ 혹은 ‘그 사회의 문제일 뿐’이라는 반응이 많았으며, 형벌 강도 역시 낮았다. 이는 우리가 피해자를 ‘자기 집단’으로 인식할수록 보호하려는 본능이 강해지고, 그렇지 않을수록 방관하거나 심지어 가해자를 옹호하는 경향까지 보일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실험실 밖 현실에서도 이와 같은 현상은 자주 발견된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언론 보도의 편향이다. 같은 강도의 범죄라도 피해자가 사회적으로 ‘가까운’ 집단일 경우 보도량이 증가하고, 대중의 분노가 SNS를 통해 확산된다. 예를 들어, 서울의 부유한 지역에서 발생한 아동 학대 사건은 전국적인 공분을 산 반면, 지방 소도시의 이주 노동자 아동이 유사한 학대를 당한 사건은 소수 매체에만 보도되고 대중적 분노도 훨씬 약했다. 이처럼 미디어는 심리적 거리감을 줄이거나 확대하는 기능을 수행하며, 그에 따라 처벌 여론도 가변적으로 바뀐다.

또 다른 예는 국제적인 이슈에서 두드러진다. 예컨대 2015년 시리아 내전 당시 유럽 언론은 시리아 난민 아동 알란 쿠르디가 터키 해변에 떠밀려온 사진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이 이미지가 전 세계에 공유되면서 시리아 난민에 대한 관심과 지원 여론이 급격히 증가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난민 전체를 추상적인 통계로 접하게 된 대중은 관심을 잃고, 이민자에 대한 경계심이 다시 부상했다. 이는 개별 사례의 감정적 충격이 클수록 심리적 거리감을 좁히고, 처벌이나 조치 요구로 연결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심리적 거리감은 또한 가해자에 대한 인식에도 영향을 준다. 사회적으로 가까운 가해자는 ‘일시적 실수’로 해석되며 동정받을 수 있지만, 멀게 느껴지는 가해자는 비도덕적 존재로 낙인찍히기 쉽다. 미국에서 아시아계 이민자가 저지른 범죄는 일부 대중에게 집단 전체의 문제로 일반화되는 반면, 백인 가해자의 경우 개인의 정신적 문제나 환경 탓으로 설명되는 보도가 많았다. 이는 공감과 비난의 대상이 어떻게 선택적으로 결정되는지를 잘 보여준다.

또한 형사정책의 설계에서도 거리감은 중요한 변수다. 공공 여론을 반영하여 형량이나 처벌 수위를 결정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여론 자체가 심리적 거리감에 기반해 형성된다면, 제도적 공정성은 취약해질 수밖에 없다. 이를테면 연예인이 피해자인 사건은 법원에 이르기 전부터 강력한 처벌 여론이 형성되어 판결에 영향을 줄 수 있다. 반대로 사회적 약자가 피해자인 사건은 형사절차조차 제대로 진행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이처럼 대중의 감정적 반응이 제도적 정의 구현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구조는 매우 우려스럽다.

심리적 거리감을 줄이기 위해 몇몇 캠페인이나 제도적 노력도 존재한다. 일부 사법기관은 피해자의 배경을 균일하게 제시하거나, 미디어와 협력하여 보도 형식을 표준화하는 시도를 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감정의 격차와 관심의 편향은 강하게 존재하며, 이는 근본적으로 인간 심리의 구조와 관련되어 있다.

결론적으로, 심리적 거리감은 우리가 피해자와 가해자를 어떻게 인식하고, 그에 따라 어떤 처벌을 원하는지에 대해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심리적으로 가까운 피해자에게는 더 강한 보호 본능과 분노가 발휘되며, 멀게 느껴지는 대상에게는 무관심하거나 약한 처벌 태도가 형성된다. 이와 같은 경향은 사회적 정의를 위협하며, 피해자에 대한 차별적 공감과 가해자에 대한 불균형적 비난으로 이어질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감정의 기울기를 인식하고, 보다 균형 있는 판단을 내리기 위한 사회적,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그래야만 정의가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보다 보편적으로 작동할 수 있을 것이다.

 

3. 심리적 거리감의 편향을 줄이기 위한 노력 더 공정한 정의를 향해

 

심리적 거리감이 우리의 도덕 판단과 처벌 태도에 강력한 영향을 준다는 사실은 인간 심리의 복잡성과 한계를 드러냅니다. 그러나 이는 운명처럼 받아들여야 할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인지하고 개선할 수 있는 심리적 기제 중 하나입니다. 이 장에서는 이러한 심리적 거리감의 편향을 줄이기 위해 개인적, 사회적, 제도적 차원에서 어떤 노력을 기울일 수 있는지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인지적 자각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우리는 누구나 본능적으로 가까운 사람에게 더 큰 공감과 분노를 느끼며, 먼 사람에게는 덜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반응이 우리가 공정한 판단을 내리는 데 장애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순간, 심리적 거리감의 영향력은 줄어들 수 있습니다. 특히 언론 보도나 온라인 정보에 노출될 때, 우리는 피해자에 대한 정보가 제한적이거나 특정한 감정을 유도하도록 편집된 경우를 경계해야 합니다. 이때 독자는 자신의 감정 반응을 한 걸음 물러서서 바라보는 '메타인지적' 시선을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둘째, 교육적 접근이 효과적인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초등교육부터 윤리교육이나 시민교육에 심리적 거리감 개념을 도입하고, 다양한 사회집단의 고통과 상황을 공감하는 훈련을 제공한다면 공감의 폭을 넓히는 데 도움이 됩니다. 예를 들어, 다문화 교육, 장애인 인권 교육, 젠더 감수성 교육 등은 사회적 거리감을 줄이는 데 유효한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다양한 관점에서 상황을 바라보는 시뮬레이션이나 롤플레잉 기법을 활용하면 더욱 효과적입니다.

셋째, 미디어의 역할 또한 결정적입니다. 미디어는 피해자와 가해자에 대한 서사를 어떻게 구성하느냐에 따라 대중의 심리적 거리감을 좁히거나 넓힐 수 있습니다. 최근에는 범죄 보도에서 피해자의 일상이나 감정을 지나치게 강조해 감정적 여론을 유도하는 경우가 많으며, 이는 사법 판단의 공정성을 해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언론은 감정적 호소보다 균형 잡힌 정보 전달에 중점을 두어야 하며, 다양한 사회집단의 사건을 동등한 비중으로 보도하는 편집 원칙이 필요합니다.

넷째, 사법 제도 자체가 거리감의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는 구조를 가져야 합니다. 예를 들어, 배심원제나 국민참여재판 등 대중이 사법 판단에 참여하는 구조에서는 오히려 심리적 거리감이 과도하게 개입될 우려가 있습니다. 이때 법원은 객관적 판결을 위한 가이드라인을 강화하고, 판단 주체에게 사건의 배경, 관련 법 조항, 유사 판례 등의 정보를 충분히 제공해야 합니다. 또한 판결문 작성 시 피고인의 '사회적 맥락'뿐만 아니라 피해자의 인권과 피해 정도를 균형 있게 다루는 기준이 필요합니다.

다섯째, 기술적 도구의 활용도 가능합니다. 최근에는 인공지능(AI) 기술을 이용해 재범 위험성을 예측하거나, 형량의 일관성을 확보하는 시스템이 개발되고 있습니다. 물론 AI 자체도 데이터 편향의 문제에서 자유롭지는 않지만, 심리적 거리감처럼 인간의 감정에 의해 왜곡되기 쉬운 판단 영역에서 보조적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예컨대, 사건 당사자의 정체성이나 미디어 노출 여부에 관계없이 법리적 요소만으로 판단 근거를 제시하면, 인간의 주관적 거리감이 개입될 여지를 줄일 수 있습니다.

여섯째, 시민의식의 진화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더 이상 단순히 '내 주변'의 정의만을 외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공정성을 고민해야 할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SNS나 댓글 문화가 확산되면서 우리는 하루에도 수십 건의 범죄 소식을 접하지만, 그중 무엇에 분노하고 무엇을 외면할지는 각자의 심리적 거리감에 따라 달라집니다. 이때 시민 개개인이 “왜 나는 이 사건에 더 분노하고, 저 사건은 그냥 넘기는가?”를 스스로 질문해보는 성찰적 태도가 필요합니다. 이것이 반복되면, 우리 사회의 도덕적 기준은 조금씩 넓어지고 단단해질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국제적인 시야를 갖는 것도 중요합니다. 우리가 심리적 거리감을 느끼는 많은 사건들은 실제로는 매우 보편적이고 인간적인 고통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인권 침해, 전쟁, 기후 재난 등의 문제는 단지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라, 결국 우리 삶에도 영향을 미치는 현실입니다. 따라서 교육과 언론, 시민 운동을 통해 국제 문제에 대한 감수성을 기르고, 먼 거리의 피해자들도 우리와 동등한 인간으로 바라보는 시선을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렇듯 심리적 거리감은 인간 본성에서 비롯된 피할 수 없는 심리 작용이지만, 인지적 훈련과 사회적 시스템의 정비를 통해 얼마든지 그 편향을 줄일 수 있습니다. 정의란 단지 감정의 산물이 아닌, 지속적인 성찰과 노력의 결과라는 점에서, 심리적 거리감에 대한 경계는 우리 모두가 가져야 할 윤리적 의무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