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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에서의 기억은 얼마나 거짓말을 하는가: 심리학으로 본 증언의 불완전성과 위험성

by 소년의 뉴스 2025. 6. 14.

기억은 증거가 될 수 있는가?
우리는 기억을 사실의 저장소로 여긴다. 특히 법정이라는 공간에서는, 한 사람의 기억이 누군가의 자유를 결정짓는 강력한 증거로 작용한다. 하지만 심리학은 질문한다. 인간의 기억은 과연 믿을 수 있을 만큼 정확한가? 진실을 고스란히 기록하고 있는가?

수많은 심리 실험과 실제 사건들은 놀라운 사실을 보여준다. 우리가 ‘기억’이라고 부르는 것은 사진처럼 정적인 데이터가 아니라, 감정과 맥락, 암시에 따라 언제든지 수정되고 재구성되는 ‘이야기’에 가깝다. 이처럼 불완전한 기억이 단단한 증거로 포장되는 순간, 법정은 정의의 공간이 아니라 오심의 무대가 될 수 있다.

이 글에서는 심리학의 관점에서 기억이 왜곡되는 메커니즘, 법정에서 그것이 어떻게 오심을 유발하는지, 그리고 실제 사례와 연구를 통해 이를 어떻게 예방할 수 있는지를 깊이 있게 살펴본다. 당신이 믿는 그 기억, 과연 진실일까?

 

법정에서의 기억은 얼마나 거짓말을 하는가: 심리학으로 본 증언의 불완전성과 위험성
법정에서의 기억은 얼마나 거짓말을 하는가: 심리학으로 본 증언의 불완전성과 위험성

1.우리는 기억을 ‘기록’하지 않는다: 기억은 재구성되는 심리적 서사다


법정에서의 증언은 종종 진실의 핵심을 밝히는 결정적 요소로 간주된다. 특히 목격자의 진술은 사건 당시의 생생한 상황을 전달하는 유일한 수단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심리학은 이 가정에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한다. 인간의 기억은 카메라처럼 정확하게 사건을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수시로 재구성되고 변형되는 심리적 과정이라는 사실 때문이다. 이러한 특성은 특히 긴장, 충격, 시간의 흐름, 타인의 암시와 같은 다양한 변수에 따라 기억의 내용과 방향을 왜곡시킬 수 있다. 다시 말해, 우리가 믿는 ‘진실한 기억’조차 심리적·사회적 요인에 따라 거짓으로 구성될 수 있다는 것이다.

엘리자베스 로프터스 교수의 연구는 기억의 왜곡 가능성을 본격적으로 조명한 대표적인 사례다. 그녀는 사람들에게 어린 시절 놀이공원에서 길을 잃었다는 가짜 이야기를 들려준 뒤, 상당수가 이를 실제로 겪은 일처럼 기억해내는 현상을 관찰했다. 이 실험은 단지 사람의 기억이 희미해질 수 있다는 차원을 넘어서, 외부로부터의 정보 주입만으로도 ‘존재하지 않았던 기억’이 형성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특히 이처럼 인위적으로 삽입된 기억은 정서적 반응, 세부 묘사, 시각적 상상력과 함께 정당화되며, 개인에게 ‘사실’로 받아들여진다.

이런 현상은 법정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목격자는 종종 자신의 경험을 사실 그대로 이야기한다고 믿지만, 실제로는 수많은 재구성과 왜곡의 결과를 말하고 있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총성이 울리고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목격자가 본 사람의 인상착의, 움직임, 심지어는 무기의 종류조차 시간이 지나면서 바뀔 수 있다. 이때 변호사나 경찰이 질문하는 방식, 혹은 뉴스 보도를 통해 본 장면이 그 기억에 혼합되면, ‘사실’과 ‘후천적 상상’의 경계가 무너지게 된다.

심리학자들은 이를 ‘소스 모니터링 오류’라고 부른다. 이는 사람들이 어떤 정보가 처음 어디서 유래했는지를 혼동하는 현상이다. 예컨대, 실제로 보았던 일이 아니라 TV 뉴스에서 본 사건을 마치 자신이 현장에서 목격한 것처럼 기억하는 것이다. 이런 오류는 법정에서 증인의 진술을 결정적으로 흔들 수 있으며, 때로는 무고한 사람을 유죄로 만드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잘못된 기억에 의한 목격자 증언이 수많은 오심의 원인이 되었고, 이는 DNA 증거의 도입으로 명확히 드러났다. 미국 ‘무죄 프로젝트’는 DNA 재심을 통해 무죄로 풀려난 사건들 중 다수가, 초기에 잘못된 목격자 증언에 근거해 유죄 판결이 내려졌음을 밝혔다. 특히 사건 당시 어린이거나 노인이었던 목격자의 경우, 기억의 정확도가 더 낮고, 외부 암시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법정이 얼마나 기억에 의존해선 안 되는지를 명확히 보여주는 사례다.

또한 스트레스와 공포는 기억 형성에 미묘한 영향을 미친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고정 관념적 기억’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위협적 상황에서는 감각의 초점이 특정 대상(예: 총기)으로 좁혀지기 때문에, 주변 정보(예: 가해자의 얼굴, 동선 등)를 정확히 저장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법정에서는 ‘범인의 얼굴을 확실히 기억한다’고 진술할 수 있지만, 실제로는 얼굴보다는 무기나 소리 등 자극적인 요소에 주의가 집중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이는 기억의 선택적 저장과 불균형한 회상을 초래하며, 법적 판단에 중대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기억의 또 다른 특징은 ‘회상할수록 바뀐다는 점’이다. 이를 ‘기억의 재인코딩’이라고 부른다. 사람은 어떤 기억을 떠올릴 때마다 그것을 다시 저장하는 과정을 거친다. 이때 매번 약간씩 내용이 변형되며, 시간이 흐를수록 원래의 기억은 점점 더 멀어지고, 재구성된 기억이 더욱 견고해진다. 이는 법정에서 동일한 증인이 반복해서 진술할 경우, 초기의 불명확한 기억이 점차 구체적이고 확신에 찬 ‘거짓 확신’으로 강화되는 현상과 관련 있다.

이처럼 인간의 기억은 절대적이지 않다. 오히려 그것은 상황에 따라 가변적이고, 외부로부터 쉽게 영향을 받는 유기적인 심리적 산물이다. 따라서 법정에서 기억에 대한 무비판적인 신뢰는 심리학적으로 매우 위험한 판단이며, 정의 실현과도 거리가 먼 접근이다. 진실은 기억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기억 너머의 교차 증거와 신중한 분석 속에서 찾아져야 한다.

기억을 ‘진실의 창고’로 보는 인식은 심리학이 축적해 온 수많은 연구에 의해 도전받고 있다. 기억은 믿을 수 없다. 그리고 법정은, 그 믿을 수 없는 기억 위에 판결을 세울 수 없다.

기억의 불완전성은 단순한 ‘기억력의 문제’로 치부될 수 없는 복합적 구조를 지닌다. 심리학은 기억을 정적인 저장소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기억은 하나의 내러티브, 즉 개인이 자신의 경험을 기반으로 의미를 구성해가는 이야기적 구조로 작동한다. 우리는 어떤 사건을 경험하고, 그것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를 무의식적으로 선택하며, 그 선택은 정서 상태, 주변 반응, 자아 정체성 등 다양한 심리적 요소에 의해 구성된다. 다시 말해 기억은 그 자체가 '현실'이라기보다는, 우리가 현실을 해석하는 하나의 창이자, 때로는 왜곡된 거울인 셈이다.

이러한 관점은 '기억의 사회성'이라는 개념과도 맞닿아 있다. 사람은 혼자 기억하지 않는다. 우리는 타인과의 대화, 사회적 피드백, 뉴스와 미디어, 심지어 법정에서의 신문 과정에서 기억을 다시 떠올리고, 그 과정에서 기억의 내용은 유동적으로 변화한다. 이를 ‘공동 구성적 기억’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예컨대 사건 직후 타인과 이야기를 나누며 “그때 그 사람은 빨간 옷을 입고 있었지?”라는 말에 동조하는 순간, 실제로는 파란 옷을 입고 있었던 사람을 ‘빨간 옷을 입은 사람’으로 기억하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현상은 ‘정보 왜곡 효과’라고도 불리며, 로프터스의 실험을 통해 잘 알려져 있다. 그녀는 참가자들에게 자동차 충돌 영상을 보여준 뒤, “차량들이 부딪혔을 때의 속도는 어땠나요?”와 “차량들이 박살났을 때의 속도는 어땠나요?”처럼 질문만 다르게 제시했다. 그 결과, 단어의 뉘앙스 하나에 따라 참가자들의 속도 추정치와 기억 속 충돌 강도에 차이가 생겼고, 어떤 경우에는 ‘깨진 유리’처럼 실제로 존재하지 않았던 요소마저 기억해냈다. 이는 매우 단순한 언어 자극조차 기억의 내용을 조작할 수 있다는 점을 명확히 보여주는 사례다.

더욱 문제적인 것은 이러한 왜곡된 기억이 증언자의 '진심 어린 확신'과 결합할 때이다. 사람은 자신의 기억이 조작되었는지를 인식하지 못한다.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왜곡된 기억은 점점 더 선명하고 구체적인 이야기로 강화되며, 이는 증언자의 확신과 신념을 뒷받침하는 내적 근거가 된다. 이때 법정에서 진술하는 증인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본인의 왜곡된 기억을 '사실'로 믿고 있기 때문에 진지하고 일관되며 감정적인 표현까지 동반된다. 이러한 점 때문에 판사나 배심원단이 ‘신빙성 있는 증언’으로 오인하기 쉬운 것이다.

기억의 왜곡은 외부 자극뿐 아니라, 기억을 꺼내는 방식에도 영향을 받는다. ‘기억은 불러낼 때마다 변형된다’는 점은 이미 언급한 재인코딩메커니즘에서 비롯된다. 신경과학적으로, 사람이 기억을 떠올리는 순간 그 기억은 ‘불안정한 상태’에 들어가며, 이때 새로운 정보나 해석이 개입되면 변형된 형태로 다시 뇌에 저장된다. 법정에서의 반복된 진술, 언론의 보도, 혹은 주변인의 해석이 이러한 재인코딩 과정에 영향을 미쳐 기억을 점차 '가공된 이야기'로 바꿔버릴 수 있다.

특히 법정에서는 '진술의 일관성'을 신빙성의 주요 기준으로 삼는다. 하지만 심리학적으로 보면, 일관성이 반드시 진실을 뜻하지는 않는다. 앞서 말했듯이, 반복된 진술은 같은 왜곡을 강화하며, 점차 ‘내러티브로서의 기억’을 고착시키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일정한 흐름과 세부 묘사를 가진 기억이 법적 진실을 보장한다고 보는 관행은 매우 위험한 오판일 수 있다. 오히려 기억은 ‘일관되게 거짓’일 수도 있으며, 이러한 현상은 특히 아동, 고령자, 외상 경험자에게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그렇다면 이런 불완전한 기억에 기댄 법정 증언은 왜 여전히 위력을 발휘하는가? 인간은 본질적으로 ‘이야기’를 신뢰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사건에 대한 설명이 사실 그 자체보다 더 설득력을 가지는 경우가 많고, 사람들은 정황적·논리적으로 연결된 스토리에 설득당하는 경향이 있다. 즉, 법정에서는 '팩트'보다 '서사'가 더 강력할 수 있다. 이런 서사의 구성 요소로서의 기억은 진실과 허구를 넘나들며, 무고한 사람을 범인으로 몰아가거나, 실제 범인을 오히려 무죄로 풀어주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요컨대, 기억은 ‘주관적 진실’일 수는 있어도 ‘객관적 증거’로 간주되기에는 위험성이 크다. 특히 인간의 기억이 ‘항상 유동적이며 외부에 의해 조작될 수 있다’는 사실은, 법정에서 증언의 신뢰도에 매우 비판적인 시각을 요구한다. 심리학이 보여주는 기억의 유연성은 단순한 인지 과정의 특성이 아니라, 정의 실현의 과정에서 반드시 고려되어야 할 핵심적 위험 요소다. 따라서 법정은 기억의 ‘확신’이 아닌, 기억의 ‘구성 조건’을 묻는 쪽으로 전환되어야 하며, 심리학적 전문 지식이 법 제도에 필수적으로 통합되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처럼 인간의 기억이 재구성되는 서사라면, 그것이 법정에서 얼마나 취약한 증거가 되는지는 자명하다. 특히 기억은 단지 사건의 ‘내용’만을 저장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건을 겪을 당시의 ‘정서 상태’와 밀접하게 얽혀 있다. 이는 감정과 기억의 상호작용을 의미하는데, 공포, 분노, 슬픔, 죄책감 같은 감정은 기억의 저장과 회상에 강한 영향을 미친다. 문제는 이 감정이 시간이 지나면서 변화하거나, 새로운 감정과 섞이게 되면 원래의 기억 내용까지 왜곡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사건 당시에는 두려움에 떨며 도망친 사람이, 나중에 분노를 느끼며 '그때 내가 맞서 싸웠다'고 기억을 재구성할 수 있다. 이는 의도적인 거짓말이 아니라, 감정이 변함에 따라 기억의 이야기적 구조도 자연스럽게 재조정되는 인지적 현상이다.

이러한 기억의 ‘정서적 편집 기능’은 특히 트라우마 상황에서 강력하게 작동한다. 트라우마는 종종 기억을 단절시키거나 과장된 세부 묘사로 고착시키며, 때로는 현실과 상상이 구분되지 않는 형태로 남게 만든다. 실제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는 이들은 사건 당시의 기억이 단편적으로 재생되거나, 시간순이 뒤섞인 형태로 회상되는 경우가 많다. 법정에서 이러한 기억은 ‘비논리적’, ‘모순적’이라는 이유로 배척되기도 하지만, 심리학적으로는 오히려 그것이 진짜 트라우마 기억의 전형일 수 있다. 다시 말해, 법정에서의 판단 기준이 심리적 메커니즘을 오히려 오해하고 있는 셈이다.

기억은 결코 독립적인 인지 기록이 아니다. 그것은 해석되고, 감정에 따라 각색되며, 타인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다시 쓰인다. 법정이라는 ‘진실의 무대’는 바로 그 불안정한 기억이라는 각본에 의존하고 있으며, 이는 정의라는 대본을 언제든 탈선시킬 수 있는 위험한 요소로 작용한다. 심리학은 그 사실을 수십 년 전부터 경고해왔고, 이제는 제도와 사회가 그것을 진지하게 반영할 때다.

 

2.확신한다고 해서 사실은 아니다: 기억과 확신의 위험한 분리


법정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증인이 ‘거짓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거짓된 기억을 진심으로 믿고 말하는 것’이다. 심리학은 기억이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객관적이고 고정된 저장 정보가 아니라, 회상할 때마다 재구성되는 ‘심리적 추론’임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기억의 내용이 틀렸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사실이라고 굳게 믿는 현상이 자주 발생한다. 이런 현상은 특히 법정에서 매우 위험하다. 왜냐하면 판사, 검사, 변호인, 배심원 모두가 증언자의 “확신”을 신뢰성의 지표로 오판하기 쉽기 때문이다.

하지만 심리학적으로 볼 때, 기억의 ‘정확성’과 ‘확신’은 전혀 다르며, 심지어 서로 반비례할 수도 있다. 기억은 왜곡될 수 있고, 확신은 감정적으로 유도될 수 있다. 이 두 개념이 분리될 수 있다는 사실은 수많은 심리학 실험을 통해 반복적으로 검증되었다. 예를 들어, 어떤 사건의 세부 정보를 틀리게 기억하고 있음에도, 증언자는 “나는 확실히 기억합니다”, “그때 그 사람이 맞아요”라고 단언할 수 있다. 이러한 확신은 스스로에게는 심리적 안정감을 제공하지만, 외부에서는 증언의 신뢰도로 해석되어 무고한 사람에게 죄를 뒤집어씌우는 도구가 되기도 한다.

기억의 확신은 왜 그렇게 강한가?
사람들은 자신의 기억을 믿지 않으면 현실을 해석하고 살아가는 데 큰 어려움을 겪는다. 따라서 인간은 기억이 잘못되었을 가능성보다, 기억이 옳다는 믿음을 유지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이를 ‘기억의 자기합리화’라고도 부르는데, 이 메커니즘은 우리가 삶의 연속성을 유지하고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필수적이지만, 법정에서는 그 자체가 치명적인 오류로 작용할 수 있다. 어떤 사건에 대한 자신의 기억이 타인과 다를 때,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기억을 의심하기보다는, 다른 사람의 기억이나 주장을 틀렸다고 생각한다. 이처럼 기억은 단순한 회상이 아니라, 자아의 일관성을 지키기 위한 일종의 방어기제이기도 하다.

특히 어떤 기억이 강한 감정을 동반할 경우, 그 기억에 대한 확신도 비례해서 커진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감정적 증폭 효과'라고 부른다. 예를 들어, 큰 충격이나 위협을 느낀 사건은 실제보다 훨씬 더 생생하게 각인되고, 이후에도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그렇게 느꼈기 때문에 그렇게 일어났을 것이다’라는 인지가 발생한다. 이때 사람은 ‘느낀 대로’ 기억하고, 그 기억을 ‘사실로’ 확신한다. 하지만 이는 기억의 진실성과는 무관한, 정서적 자기 확신일 뿐이다.

왜 확신은 기억의 정확도를 보장하지 못하는가?
확신이 정확도를 보장하지 않는 이유는 여러 심리학적 요인에 의해 설명된다. 첫째, 회상에 대한 메타인지의 오류가 있다. 이는 사람들이 자신의 기억이 정확한지를 판단할 때 사용하는 내적 기준이 일관되지 않고, 객관적 근거 없이 '느낌'에 의존하는 경향을 말한다. 예컨대, 어떤 기억이 또렷하게 떠오르면 “그건 확실한 기억이야”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 또렷함이 반복된 상상이나 타인의 피드백에 의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것일 수 있다.

둘째, 사회적 피드백에 의한 자기확신의 강화도 중요하다. 사람이 어떤 기억을 이야기했을 때, 주변에서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하거나, 권위 있는 인물(예: 경찰, 검사, 치료사)이 “그 기억은 중요합니다”라고 말하면, 그 기억은 점점 더 확신을 얻게 된다. 이것은 기억의 사회적 구성이라는 특성과 맞닿아 있으며, 실제보다 기억에 대한 확신을 인위적으로 부풀리는 역할을 한다. 특히 조사 과정에서 반복적으로 같은 질문을 받거나, 유도 질문을 경험한 사람들은 기억의 내용보다 확신의 강도가 오히려 더 빨리 자라나는 경향을 보인다.

셋째, 기억의 이미지화 효과 역시 확신의 원인 중 하나다. 반복해서 상상하거나 머릿속으로 장면을 그리는 과정이 반복될수록, 실제로 경험하지 않은 일조차 기억처럼 느껴지는 현상이 발생한다. 이는 “소위 가짜 기억”의 대표적인 예로, 실험실에서 반복적으로 입증된 효과다. 예컨대, ‘당신이 어렸을 때 놀이공원에서 길을 잃은 적이 있다’는 이야기를 반복해서 들으면, 실제로 그런 일이 없었더라도, 그 장면을 상상하고 이미지화하는 과정에서 뇌는 그 경험을 '기억'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이때 사람은 “아, 그거 진짜 있었던 일이야”라고 확신하게 된다.

심리학이 제시하는 법적 경고: 확신은 증거가 아니다
엘리자베스 로프터스를 비롯한 기억 연구자들은 수십 년 동안 법정에서의 기억 증언에 대해 일관된 경고를 해왔다. 특히 그녀는 “가장 위험한 증인은, 거짓을 말하면서도 자신이 진실을 말하고 있다고 믿는 사람”이라고 지적한다. 이는 단지 거짓말 탐지기나 증언의 표정 분석만으로는 감지할 수 없는 종류의 오류다. 사람이 자신의 기억을 진심으로 믿고 있을 때, 그는 비언어적 신호조차도 진실된 것처럼 보이며, 그 확신은 사람들의 판단에 강한 인상을 남긴다. 법정 심리학에서는 이를 ‘신빙성의 환상’이라고도 부른다.

따라서 현대 심리학은 법적 제도에 다음과 같은 세 가지 핵심 경고를 던진다.

확신이 강하다고 해서 그 기억이 진실이라고 간주해서는 안 된다.

기억은 항상 외부 자극에 의해 쉽게 변형되며, 재현될 때마다 재구성된다.

증언자의 진지한 태도나 감정 표현은 진실성의 척도가 될 수 없다.

법정에서의 증언은 종종 사건의 핵심 단서가 된다. 하지만 이 단서는 그 자체로 불완전하며, 조작되거나, 오해되었거나, 심지어는 ‘믿음 속의 허구’일 수 있다. 더불어 대중과 사법기관 모두가 아직도 “자신감 있게 말하는 증언 = 진실된 기억”이라는 등식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현실은, 무고한 이들을 범인으로 만들고, 진짜 가해자를 놓치는 치명적인 오류를 반복하게 만든다.

확신이라는 감정이 주는 법적 함정
인간은 ‘확신 있는 말’에 약하다. 뉴스에서, 법정에서, 심지어 친구의 조언 속에서도 우리는 말투와 어조에 영향을 받는다. 법정에서는 특히 증언자의 단언적 어조, 자신 있는 목소리, 감정을 동반한 진술이 배심원의 정서와 판단을 크게 흔든다. 이것은 비단 일반인의 문제가 아니다. 숙련된 판사나 검사도 이러한 확신의 외피에 현혹되어 증언의 사실 여부를 잘못 판단할 수 있다. 결국 사법 절차 전체가 ‘진심 어린 착각’에 의해 왜곡될 수 있는 구조 속에 있다는 사실은 매우 심각한 문제다.

그렇기에 심리학은 기억의 확신과 정확성 사이의 이 간극을 반드시 제도적으로 반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단순히 증언자의 진지함, 일관성, 감정 표현, 어조 등을 신뢰성의 지표로 삼기보다는, 기억의 생성 조건, 회상의 맥락, 외부 유도 가능성 등 심리학적 요소들을 함께 평가해야 한다. 증언에 심리학적 검증과 개입이 필요한 이유는, 그것이 단지 ‘부수적 참고사항’이기 때문이 아니라, 인간 기억의 본질이 그만큼 불완전하고, 착각이 현실을 바꿔버릴 만큼 강력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확신은 기억의 정확성과 무관하다는 심리학적 사실은, 법정에서 벌어지는 실제 사건들을 통해 극적으로 드러난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오심’이다. 미국의 비영리 단체 ‘이노센스 프로젝트’는 DNA 분석 기술을 이용해 무고하게 수감된 사람들의 결백을 입증하는 활동을 해오고 있다. 이 단체에 따르면, DNA 증거로 결백이 입증된 수백 건의 사건 중 70% 이상이 ‘잘못된 목격자 증언’에 의해 유죄 판결이 내려진 경우였다. 이들은 대부분 진심으로 기억한다고 말했고, 법정에서도 흔들림 없는 확신을 보였다. 그러나 그들의 ‘확신’은 진실을 보장해주지 않았다.

이 사례들은 심리학이 제시하는 이론들이 단순히 실험실 안의 이론이 아니라, 실제 인간의 삶과 자유를 위협할 수 있는 현실적인 문제라는 점을 상기시킨다. 기억이 얼마나 쉽게 조작될 수 있는지, 그리고 확신이 얼마나 위험한 신호인지에 대해 무시하거나 과소평가한 결과는, 무고한 인생을 감옥에 가두고 진짜 범인을 놓치는 사회적 재난으로 이어진다.

특히 아동이나 정신적 충격을 겪은 피해자의 진술은 더욱 민감한 문제다. 이런 경우, 수사관이나 상담사가 무의식적으로 유도 질문을 던지거나 특정 방향으로 기억을 강화하려 할 경우, 피해자는 처음엔 자신이 애매하게 느꼈던 장면조차 점점 더 명확하게 ‘기억한다’고 느끼게 된다. 심리학자들은 이를 ‘소스 모니터링 오류’라고 부르는데, 이는 기억의 내용이 어디서 유래했는지를 구분하지 못하는 오류다. 예컨대 꿈에서 본 장면, 타인에게 들은 이야기, 반복해서 상상한 이미지가 실제 경험과 혼동되는 것이다. 이 오류는 특히 어린이에게서 빈번하게 나타나며, 무의식적 유도로 인해 가짜 기억이 진실처럼 자리 잡는 일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여기에 더해, 사회문화적 맥락 역시 확신과 기억의 위험한 결합을 부추길 수 있다. 법정은 단지 개인의 기억만을 심리적으로 평가하는 장소가 아니다. 그곳은 사회적 신념, 미디어 담론, 권력관계, 젠더 편견이 교차하는 복합적인 공간이다. 예컨대, 성범죄 사건에서는 피해자의 감정 표현이나 기억의 일관성이 여성의 ‘진정성’을 판단하는 주요 기준으로 여겨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심리학적으로 감정은 기억의 왜곡 요인일 수 있으며, 트라우마 피해자는 오히려 기억의 흐름이 단절되거나, 정서 표현이 무뎌질 수 있다. 그러므로 ‘감정이 풍부하니까 진짜다’, 혹은 ‘차분하니까 거짓말이다’라는 단순한 기준은 편향된 판단을 낳을 수 있다.

한편, 확신의 위험성은 디지털 시대에 더욱 증폭된다. SNS를 통해 유포되는 정보들은 반복적으로 노출되며 일종의 ‘기억’처럼 정착되는데, 이때 사람들은 진짜 경험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 정보에 확신을 갖게 된다. 예를 들어, 어떤 인물이 특정 사건의 범인이라고 지목되었을 때, 그것이 사실로 확정되기 전부터 반복 노출과 군중 심리에 의해 대중은 그 사람을 '확실한 범인'으로 인식하게 된다. 이러한 현상은 집단 기억의 형성과 관련되며, 개인의 확신이 사회 전체의 오판으로 확장되는 메커니즘을 설명한다. 디지털 공간에서의 확신은 더욱 강력하고 빠르며, 그만큼 더 위험하다.

법정 제도는 아직까지도 확신을 ‘진실의 징후’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 검사는 “이 사람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일관되게 진술했다”고 말하고, 변호사는 “그 기억은 너무나도 구체적이라 조작일 수 없다”고 반박한다. 판사나 배심원은 이러한 언어에 설득당하기 쉽고, 그렇게 ‘확신의 서사’가 현실의 결정을 좌우하게 된다. 하지만 심리학은 이 모든 말들을 비판적으로 바라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일관성과 구체성은 조작된 기억에서도 충분히 발생할 수 있으며, 반복된 회상은 거짓 기억조차 생생하고 확신 있게 만든다. 이론상으론 완벽한 증언이라 해도, 인지적·사회심리적 관점에서는 충분히 의심해볼 만한 것이다.

이러한 배경에서 우리는 심리학의 지식을 법제도에 보다 적극적으로 통합할 필요가 있다. 단지 기억 심리학 전문가를 법정에 불러 ‘설명’하는 수준을 넘어서, 수사 단계부터 증언 수집, 질문 방식, 진술 평가 방법까지 전반적인 시스템을 기억의 특성과 한계에 맞게 설계해야 한다. 예를 들어, 유도 질문을 차단하고, 사건 회상의 순서를 뒤섞거나 자유롭게 서술하도록 하는 ‘인지면담’ 기법은 기억의 왜곡을 최소화하고 보다 진실에 가까운 회상을 이끌어내는 데 도움이 된다. 또한 배심원 교육에 심리학적 기초지식을 포함시키는 것 역시, 증언 평가의 질을 높일 수 있는 실질적 방안이다.

결론적으로 말해, 확신은 진실의 반대편에 서 있을 수도 있다. 인간은 자신이 믿는 것을 사실로 기억하고, 그 기억에 전율하고, 감동하고, 오해하고, 때로는 그것으로 타인을 파괴한다. 법은 사실에 기반해야 하며, 그 사실은 확신이 아니라 검증과 반추의 결과물이어야 한다. 심리학은 우리에게 그 경계를 꾸준히 경고하고 있으며, 이제는 법이 그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할 때다.

기억과 확신의 괴리를 더 정밀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기억이 작동하는 방식 그 자체를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기억은 우리가 종종 믿는 것처럼, 카메라처럼 사실을 충실히 저장하는 매체가 아니다. 오히려 기억은 구성적이다. 우리는 정보를 인출할 때마다 그것을 ‘재생’하는 것이 아니라 ‘재구성’하며, 이 과정에서 기존의 믿음, 정서, 기대, 사회적 압력, 질문의 맥락 등이 기억의 내용에 영향을 준다.

예를 들어, 심리학자 바틀렛은 이미 1930년대 실험을 통해, 사람들은 자신의 문화적 배경에 맞게 기억을 왜곡해 재구성한다는 점을 밝혀냈다. 그는 참가자들에게 낯선 원주민 이야기를 들려주고 시간이 흐른 뒤 그것을 다시 회상하게 했는데, 참가자들은 문화적으로 익숙하지 않은 요소들을 자신에게 익숙한 방식으로 바꾸어 기억했다. 이는 기억이 단순한 저장이 아니라 기존 지식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의미화’되어 회상된다는 점을 보여준다. 그런데 이런 기억도 강력한 ‘확신’을 동반할 수 있다.

확신은 인지적 오류나 착각이 아닌, 오히려 기억을 신뢰하게 만드는 진화적 메커니즘일 수 있다. 생존에 필요한 정보, 위험과 관련된 사건일수록 우리는 그것에 대해 더 높은 확신을 가지게끔 진화했을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이러한 진화적 경향은 현대 사회, 특히 법정 같은 신중함이 요구되는 환경에선 문제를 일으킨다. 즉, ‘확신’은 정보의 신뢰도를 판단하기 위한 수단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그것은 그저 뇌가 그렇게 ‘느끼게 만든 것’일 뿐이다.

또한, 뇌과학 연구는 확신과 관련된 특정 뇌 영역의 활성화가 기억의 정확성과 무관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한 연구에서는, 잘못된 기억을 회상하면서도 매우 확신에 찬 사람들의 뇌에서 내측두엽이나 전두엽의 특정 부위가 활성화되었음을 관찰했다. 이는 ‘거짓이지만 확신에 찬 기억’이 뇌 수준에서 실재하는 ‘경험’처럼 처리된다는 점을 시사하며, 확신을 ‘정신적 착각’이나 ‘거짓말’로만 간주하는 단순한 프레임이 오히려 진실을 왜곡할 수 있음을 경고한다.

여기에 사회적 맥락까지 결합되면, 확신은 단순한 개인적 심리현상을 넘어 구조적 위험요소로 발전한다. 특히 권위 있는 인물—예컨대 경찰, 검사, 심리상담사의 확신은 매우 큰 설득력을 갖는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확신 편향’이라고 부르며, 우리는 어떤 주장의 신빙성을 그것의 내용이 아니라 그 주장을 말하는 사람의 확신의 정도로 판단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뜻한다. 다시 말해, 한 사람이 얼마나 확신에 차서 말하느냐는 그 주장이 옳을 가능성과는 관계없지만, 사람들의 판단에는 매우 큰 영향을 미친다. 이는 법정에서 증인의 신뢰도를 평가할 때, 실제 사실 여부가 아니라 ‘말하는 방식’과 ‘감정의 표현’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할 수 있다는 위험을 보여준다.

이러한 점은 증언뿐 아니라 자백에서도 심각한 문제를 야기한다. 심리적으로 불안정한 상태에서 수사관의 압박이나 반복된 질문에 노출된 피의자는, 처음에는 없었던 기억조차 점점 더 구체적이고 확신에 찬 방식으로 ‘구성’하게 된다. 미국에서는 수많은 강압적 심문 끝에 자백을 한 피의자들이 DNA 증거로 무죄임이 밝혀졌는데, 이들 중 다수가 자백 당시 자신의 진술에 대해 명백한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자신이 범죄를 저질렀다고 진심으로 ‘기억’하는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이처럼 확신은 진실과의 거리보다 감정과 맥락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며, 그것이 법적으로 얼마나 위험한 요소인지를 드러낸다.

법 제도는 이 위험을 줄이기 위한 심리학적 통찰을 더욱 적극적으로 수용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증언을 평가할 때 단지 진술의 구체성이나 일관성만이 아니라, 기억이 왜곡될 수 있는 환경적·정서적 요인, 반복 회상의 횟수, 피조사자의 스트레스 수준, 질문 방식 등을 함께 분석하는 체계적인 기준이 마련되어야 한다. 또한, 배심원들이 심리학적 증언의 한계와 ‘확신 편향’에 대해 미리 학습하고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심리문해’ 교육도 제안될 수 있다.

결국, 확신은 진실의 증거가 아니라 인간 인지의 일시적인 산물이다. 우리가 이 확신을 사실의 보증으로 잘못 간주할 때, 법은 정의가 아닌 오심을 양산하게 된다. 심리학은 이를 경고하며, 우리가 얼마나 쉽게 자신조차 속일 수 있는 존재인지, 그리고 그 속임수가 얼마나 그럴듯한지를 보여준다. 이제 법은, 이 무서운 사실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3.기억이라는 증거, 정의를 위협하다: 실제 사례로 보는 오심의 심리학


법정은 진실을 가리는 장소이자, 그 진실을 뒷받침할 수 있는 ‘증거’를 평가하는 공간이다. 그러나 심리학은 인간이 자주 진실과 증거를 혼동하며, 특히 '기억'이라는 증거에 과도한 신뢰를 두는 경향이 있다는 점을 오랫동안 경고해왔다. 앞서 논의했듯이 인간의 기억은 정적인 기록이 아니라 역동적인 구성물이며, 회상 과정에서 왜곡되고 재구성되기 쉬운 특성을 지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정에서는 증언, 즉 인간 기억을 기반으로 한 발화가 유력한 증거로 간주되는 일이 빈번하다. 특히 피해자나 목격자의 진술이 사건의 핵심적 근거가 되는 경우, 이 기억이 얼마나 정확한지에 대한 의심 없이 판결이 내려지는 경우가 존재한다. 이러한 신뢰가 때로는 끔찍한 오심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제 실제 사례들을 통해, 기억이라는 증거가 어떻게 정의를 위협하는지를 심리학적으로 탐구해보자.

-11년의 억울한 수감, 그리고 DNA: 론 코튼 사건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주의 론 코튼은 1984년, 성폭행 혐의로 체포되어 유죄 판결을 받고 11년간 수감생활을 했다. 피해자인 제니퍼 톰슨은 경찰 조사에서 코튼을 범인으로 지목했으며, 재판에서도 "그를 절대 잊을 수 없다"고 단언했다. 그녀는 당시 범인의 얼굴을 기억하려고 애썼으며, 용의자 사진 중 코튼의 얼굴을 선택했고, 그 선택은 그녀의 기억 속 범인 이미지로 고착되었다. 이 기억은 매우 구체적이고 일관되었으며, 그녀는 법정에서도 확신에 찬 태도를 보였다. 배심원들은 그녀의 확신을 보고 망설이지 않고 유죄를 선고했다.

하지만 11년 후, 당시 기술로는 분석할 수 없었던 DNA 증거가 다시 검토되었고,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실제 범인은 전혀 다른 인물로 확인되었으며, 코튼은 무죄로 석방되었다. 제니퍼는 뒤늦게 자신의 기억이 잘못되었음을 받아들였고, 그 죄책감으로 이후 피해자-피고인 오심 방지를 위한 활동가가 되었다.

이 사건은 단지 하나의 실수나 비극이 아니라, 인간 기억의 취약성과 오판의 구조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피해자가 기억하려고 ‘애썼던’ 노력조차, 오히려 잘못된 기억을 강화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이 현상은 심리학에서 ‘정보 고정화’나 ‘신념 편향’ 등으로 설명되며, 한번 형성된 기억이 외부 정보를 걸러내고 선택적으로 강화되는 과정을 의미한다.

-자백도 확신도 거짓일 수 있다: 브렌던 대시 사건
넷플릭스 다큐멘터리를 통해 널리 알려진 브렌던 대시의 사건은 자백조차 조작될 수 있으며, 자백이 반드시 진실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경고한다. 당시 16세였던 브렌던은 학습장애를 가진 소년으로, 경찰의 지속적인 압박과 유도 질문 속에서 범죄에 대한 상세한 자백을 하게 되었다. 그는 처음엔 "모른다"고 답했지만, 수사관들이 "우리는 네가 뭔가 안다는 걸 안다"는 식으로 추궁하자 점차 진술을 바꾸기 시작했다. 그가 말한 내용은 실제 증거와 맞지 않았지만, 경찰은 그의 자백 일부만을 부각시키며 사건을 꾸며갔다.

심리학자들은 이 사건을 분석하며, 브렌던이 실제로는 기억을 재구성한 것이 아니라 ‘외부 기대에 맞는 이야기’를 만들어낸 것이라고 본다. 이는 ‘순응형 자백’으로 불리며, 특히 권위 앞에서 무력감을 느끼는 청소년이나 인지적 취약군에서 자주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는 반복된 유도 질문을 통해 스스로 ‘자백한 기억’을 만들었고, 그 자백에 심리적으로 동화되었다.

자백이 기억에 의해 구성되는 것이라면, 그리고 그 기억이 타인의 기대와 맥락 속에서 얼마든지 조작될 수 있다면, 법정은 과연 무엇을 진실로 삼아야 하는가? 이 사건은 기억이 ‘내면의 증거’가 아니라, 때로는 ‘외부의 강요가 투영된 허상’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

-법정이라는 연극, 배심원이라는 관객
법정은 진실을 밝히는 공간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설득’이 작용하는 공간이다. 검사는 확신에 찬 피해자 진술을 강조하고, 변호사는 그것의 모순을 부각시킨다. 하지만 문제는 배심원들이 심리학적으로 '확신'이라는 신호에 과도하게 반응한다는 점이다. 다양한 연구는 일관된 진술, 구체적인 언어 사용, 감정 표현 등이 배심원의 신뢰도를 결정짓는 핵심 요소라고 밝혀냈다. 그러나 이 세 가지 요소는 실제 사건을 겪지 않은 사람도 훈련을 통해 충분히 만들어낼 수 있다. 심지어 거짓 기억에 기반한 진술조차, 그 구성 방식에 따라 법정에서 ‘신빙성 있는 이야기’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이러한 ‘서사 중심 판단’은 기억의 진실성과 무관하게, 기억이 표현되는 방식에 영향을 받는다. 즉, 우리는 진술의 내용보다 그것이 얼마나 ‘그럴듯하게’ 들리는지에 따라 판단하는 경향이 있는 것이다. 이런 판단 오류는 특히 감정적으로 복잡한 사건 성범죄, 아동 학대, 고문 사건 등에서 더욱 심화되며, 기억이라는 증거의 불안정성을 제도적으로 다루는 장치가 없는 경우 치명적인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제도는 무엇을 바꿔야 하는가
그렇다면 우리는 이 심리적 한계 앞에서 어떤 제도적 조치를 취해야 할까? 단지 개인의 조심성과 성실성에 기대는 것을 넘어서, 구조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첫째, 수사 초기 단계에서부터 ‘인지면담’과 같은 기억 왜곡을 최소화하는 조사기법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 이는 자유 회상을 유도하고, 특정 단어 사용이나 순서에 영향을 받지 않게 하며, 기억의 왜곡 가능성을 줄이는 심리학적 기법이다.

둘째, 법정에서 증언의 신뢰도를 판단할 때, 일관성이나 구체성만을 기준으로 삼는 전통적 기준을 재검토해야 한다. 심리학 전문가의 자문을 의무화하고, 배심원이나 판사가 기억 왜곡과 거짓 확신의 메커니즘에 대한 교육을 받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다.

셋째, 자백이나 증언 외에도 다양한 객관적 증거 예컨대 CCTV, 통신 기록, DNA 분석 등와 기억이라는 증거 간의 관계를 구조적으로 재정비해야 한다. 심리학은 기억이 쉽게 왜곡된다는 점을 강조하지만, 이를 무시한 채 ‘확신에 찬 증언’을 만능처럼 받아들이는 제도는 재고되어야 한다.

기억은 단순한 정보 저장고가 아니다. 그것은 감정, 맥락, 권력 관계 속에서 구성되고 다시 재생산되는 유기적인 내러티브다. 특히 법정이라는 공간은 개인의 기억을 철저히 분석하는 장소가 아니라, 설득력 있는 이야기의 경쟁장이 된다. 이 상황은 인간이 가진 두 가지 인지적 취약점감정 의존성과 권위 순응성과 맞물릴 때 더욱 위험해진다.

감정은 기억을 강화시키기도, 왜곡시키기도 한다
많은 연구는 감정이 강하게 개입된 사건일수록 기억이 더 선명하게 남는다고 제안한다. 이를 '플래시벌브 기억'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사람들이 9.11 테러나 세월호 참사 같은 충격적 사건을 마치 사진처럼 생생하게 기억하는 현상이다. 그러나 이러한 기억조차도 시간이 지나며 왜곡된다는 사실이 반복적으로 입증되고 있다. 심지어 초기 기억이 매우 강렬했을수록, 그에 대한 자기 확신도 더 커지고, 나중에 오류를 인정하기 더 어려워진다.

법정에서의 피해자 증언은 이 점에서 이중적으로 작용한다. 한편으로는 피해 경험이라는 감정적 사건이 기억의 생생함을 부여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 생생함이 실제 사실과는 다른 방향으로 고착될 수 있다는 것이다. 피해자는 자주 자신의 기억을 ‘신념화’하고, 그 신념은 외부로부터 도전을 받으면 오히려 더욱 강화된다. 이를 ‘인지적 정합성 유지’라 부르며, 인간이 자신의 자아와 경험을 일관되게 유지하려는 심리적 경향을 설명한다.

문제는 이러한 감정 기반의 신념이 때론 사실과 충돌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사건 당시의 세부사항 예를 들어 범인의 얼굴, 옷차림, 말투, 행적에 대한 기억은, 감정의 흐름 속에서 빠르게 왜곡되거나 지워질 수 있다. 그러나 그 감정 자체가 너무 강렬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렇게 기억하지 않을 리 없다"고 확신한다. 그 결과, 강렬한 감정이 진술의 신뢰성을 높이는 반면, 그 내용의 정확성은 의심받지 않게 되는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권위 앞의 기억: 사회적 기대가 구성하는 진술
기억은 단순히 개인 내면의 작용이 아니라, 사회적 상호작용에 의해 만들어진다. 특히 경찰 조사나 법정 심문처럼 권위가 명확하게 작용하는 환경에서는,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기억’을 구성한다. 이는 심리학자 엘리자베스 로프터스의 '암시 효과' 실험에서 대표적으로 드러난다.

로프터스는 실험 참가자들에게 교통사고 영상을 보여준 뒤, "차가 멈추기 전에 멈춤 신호를 지나쳤나요?" 혹은 "정지 표지판을 지나쳤나요?"와 같이 다르게 표현된 질문을 던졌다. 그 결과, 질문의 언어적 프레이밍에 따라 참가자들이 실제로 존재하지 않았던 ‘정지 표지판’을 기억하거나, 사고의 속도에 대한 판단을 왜곡하는 등, 단지 질문 방식만으로도 기억이 변형되는 현상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러한 결과는 법정 상황에서도 유사하게 나타난다. 예컨대 경찰이 목격자에게 사진 라인업을 보여줄 때, "이 중에 범인이 있다면 누구인가요?"라고 묻는 순간, 목격자는 자신이 본 사람을 회상하는 것이 아니라 "이 안에서 가장 비슷한 사람을 골라야 한다"는 전제로 전환한다. 이 전제는 잘못된 선택을 만들어내고, 그 선택은 다시 "내가 범인을 봤다"는 거짓된 기억을 낳는다. 권위의 프레임은 기억을 조작하지는 않더라도, 그 구성을 유도한다는 점에서 심각한 왜곡의 요인이 된다.

"진실처럼 들리는 이야기"의 위력: 스토리텔링 편향
법정에서의 판단은 종종 ‘사실’보다는 ‘이야기’에 기반한다. 이 현상을 심리학에서는 '스토리 모델'이라고 부른다. 배심원이나 판사는 사실을 나열식으로 평가하기보다는, 그 사실들을 종합하여 하나의 ‘이야기’로 구성하고, 그 이야기의 논리성, 개연성, 감정적 납득 가능성 등을 기준으로 판단을 내린다.

문제는 이 ‘이야기’가 반드시 진실일 필요는 없다는 점이다. 오히려 잘 짜여진 이야기 기승전결이 명확하고, 인물의 감정이 설득력 있게 묘사되어 있으며, 동기와 결과가 부합하는 구조가 진실처럼 받아들여지기 쉽다. 이는 기억의 진실성이 아니라, 스토리텔링의 기술이 판결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심지어 목격자나 피해자가 자신도 모르게 그런 ‘이야기 구조’에 맞춰 기억을 재구성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어떤 피해자는 “그가 내 눈을 보며 말했다”는 기억을 1년 뒤에도 일관되게 주장했지만, 실제 범인은 마스크를 쓰고 있어 눈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피해자의 뇌는 ‘위협적인 상황에서 눈을 마주쳤다’는 스토리를 만들어내며, 그 구체적 장면을 기억으로 착각하게 된 것이다.

국내 사례: 윤성여 사건과 비슷한 오심들
한국에서도 이러한 기억 기반 오심의 사례는 적지 않다. 대표적으로 '삼례 나라슈퍼 강도치사 사건'에서 목격자 진술에 의존한 채 피의자들이 자백하게 된 과정은, 기억과 자백이 어떻게 사회적 구조 속에서 왜곡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피해자의 기억은 혼란스러웠고, 피의자의 진술은 반복적 심문 끝에 강압적으로 얻어진 것이었지만, 당시에는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러한 오심 사례는 단순히 수사의 미흡함 때문이 아니라, ‘기억’이라는 증거가 가진 구조적 한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심리학적 방어장치 없이 법적 절차에 진입했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법은 객관성을 추구하지만, 인간의 기억은 주관적 구성물이다. 이 둘 사이의 간극을 메우지 않는다면, 오심은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기억은 고립된 개인의 뇌 속에서만 작동하는 현상이 아니다. 그것은 사회적 존재로서의 인간이 타인과 상호작용하며 지속적으로 확인받고 수정하는, 집단적 구성물이다. 이는 특히 목격자 진술이나 피해자 증언이 여러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교차 확인’되거나 ‘서로 유사해지는’ 경향을 보일 때 문제로 부상한다.

집단 동조 효과: 다른 사람의 기억이 나의 기억을 바꾼다
심리학자 솔로몬 아쉬의 고전적인 실험은 사람들이 다수의 의견에 순응하는 경향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이는 단순한 선분 길이 인식 실험이었지만, 참가자들은 명백히 잘못된 다수의 의견에 압도되어 자신의 시각적 판단을 바꾸었다. 이 현상은 기억 영역에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난다. 사람들이 동일한 사건을 경험한 후 토론하거나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개개인의 기억은 동질화된다.

목격자끼리 사전 교류가 있었던 경우, 그들이 기억하는 세부사항은 실제보다 더 유사해지는 경향이 있다. 이 현상은 진실을 밝히는 데 도움이 되기보다는, 집단적 오류를 강화하는 역할을 한다. 예컨대 한 사람이 "그 사람은 빨간색 점퍼를 입고 있었어"라고 말하면, 다른 사람의 기억 속 파란 점퍼가 ‘빨간 점퍼’로 대체되기도 한다. 이는 기억의 사회적 오염이라 불리는 현상이며, 법정에서의 다수 증언을 절대적인 신뢰의 지표로 삼을 수 없다는 근거가 된다.

시간은 진실을 지우고 확신을 만든다
기억은 시간이 지나면 퇴색한다. 이는 자연스러운 인지적 경향이다. 그러나 심리학적으로 흥미로운 점은, 시간이 지나면서 기억의 정확성은 줄어드는데 반해, 그에 대한 확신은 오히려 증가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를 ‘확신-정확성 불일치’라고 부르며, 오심의 심리학에서 핵심적인 문제로 다뤄진다.

한 실험에서는 목격자들에게 범죄 영상을 보여주고 며칠 후에 용의자 라인업을 제시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목격자들이 실제 용의자가 아닌 사람을 지목할 확률이 높아졌고, 동시에 자신이 맞다고 믿는 정도 즉 확신도 함께 증가했다. 이는 인간 기억이 ‘추상화된 인상’을 반복적으로 재생함으로써, 세부 정보는 사라지고 핵심 이미지와 감정만이 고착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문제는 이러한 확신이 법정에서 신뢰의 지표로 오용된다는 것이다. 판사나 배심원은 증인이 흔들림 없이 “분명히 이 사람이었습니다”라고 말하면, 그 진술에 강한 진정성과 신뢰를 부여한다. 그러나 심리학은 말한다. 확신은 ‘정확성의 증거’가 아니다. 오히려, 시간이 만든 자기 확신의 착각일 수도 있다고.

심리학이 제안하는 개선책: 기억 기반 증언의 위험을 줄이려면
그렇다면 이러한 오심을 방지하기 위해 심리학은 어떤 조언을 제시할 수 있을까? 다음은 대표적인 심리 기반 법적 개입 방안들이다.

-이중 맹검 라인업
경찰이 용의자를 목격자에게 보여줄 때, 진행하는 경찰관조차 누가 진짜 용의자인지 모르게 하는 방식이다. 이로써 무의식적인 유도나 암시를 차단하고, 목격자의 판단이 외부 영향 없이 이루어지도록 유도할 수 있다.

-개방형 질문
“이 중에 범인이 있습니까?”보다는 “당시 상황에 대해 기억나는 대로 말씀해주세요”와 같은 개방형 질문을 통해, 증인의 기억 왜곡 가능성을 낮출 수 있다. 이는 로프터스의 실험에서도 암시적 질문이 얼마나 쉽게 기억을 오염시키는지 입증된 바 있다.

-증언의 신뢰도 평가 교육
판사, 검사, 변호사뿐만 아니라 일반 배심원들도 인간 기억의 오류 가능성에 대해 기본적인 심리학 교육을 받아야 한다. 교육을 통해 ‘생생한 진술 = 사실’이라는 단순화된 판단 기준을 수정할 수 있다.

-기억 신뢰도에 대한 전문가 증언 허용 확대
한국을 포함한 많은 나라에서 심리학자의 법정 참여는 여전히 제한적이다. 그러나 기억의 신뢰도를 평가하고, 그 한계를 설명할 수 있는 전문가의 진술은, 오심을 막기 위한 중요한 장치가 될 수 있다.

 

기억은 인간적이지만, 법은 시스템적이어야 한다
기억은 인간의 경험과 정체성을 구성하는 핵심이지만, 그 인간적인 요소가 때론 정의의 적이 될 수도 있다. 아무리 선의에서 비롯된 증언이라 해도, 그 기억이 구성되고 왜곡될 수 있다면, 그 자체로 법적 판단의 근거가 되기엔 위험하다. 우리는 이 위험을 단지 심리학의 이론이 아니라, 실제로 수많은 오심 피해자들의 인생을 통해 목격해왔다. 이제 남은 질문은 하나다. 법은 이 불완전한 기억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 그리고 우리는, 기억이라는 증거가 진실이 아닐 수 있음을 인정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